밤을 지새우고 집으로 가는 버스는 위태로웠다.
한 숨 자지 않고 새벽 첫 차를 타고 집으로 가는 경우 그는 내려할 곳을 지나치곤 했다. 끝없이 밀려오는 졸음 때문이었다. 밤새워 놀다가 지친 그는 불꽃이 사그라들듯 버스에서 점멸하기 시작한다.
번쩍- 번쩍-
늦은 봄의 자태가 완연한 거리에 어스름히 가로수와 정류장이 드러나기 시작한다. 번쩍하고 지나가는 짧은 의식의 흐름 속에 오래된 필름처럼 순간의 장면들이 찍혀나간다. 그러다 영사기의 빛이 완전히 페이드 아웃하는 순간이 있다. 그 순간은 너무나 찰나이지만, 다시 눈을 떠보면 벌써 몇 정거장씩 지나쳐버린다.
'정신 차려야지.'
그는 종점까지 갔을 경우 뒤따라오는 수고스러움을 경계한다. 집과 종점은 멀지 않았지만, 그래도 귀찮은 것은 귀찮은 것이리라. 그는 그렇게 생각한다. 잠을 쫓을 수 있는 방법이 무엇일까 고민하며 몸을 추스린다. 그러다 중간고사를 치뤘던, 그 고난했던 지난 주를 떠올리며 그는 행복해한다. 시험도 그만하면 잘 치룬 편이었고, 이제부터 일주일은 신나게 놀 작정이었다. 오늘 밤을 지새운 것도 그 계획의 일부분이었다. 친구들과 함께했던 LOL은 멘탈붕괴의 연속이었고, 기대했던 멘체스터 더비는 퍼기 영감의 보기 드문 싸움장면을 제외하면 일방적인 경기의 일방적인 허무함이었다. 그래도 좋았다. 시험이 끝나고 나 자신을 완전히 놓은 상태, 물론 클럽에 가거나 그 곳에서 여자를 꼬시는, 21C 현대 남성이라면 마땅히 취해야할 그러한 스탠스는 아니었지만, 그는 그것을 그것 나름대로 좋아했다.
하지만 언제나 그렇듯이 행복감은 오래가지 않는다. 늘 그래왔듯 과거의 기억이, 과거의 사건이 불연듯 머릿 속에 나타나 그를 괴롭히기 시작한다.
"우리가 집을 비워야 될 수도 있다."
실로 오랜만에 멋지게 차려입고 외출했던 그 날, 유난히 햇살이 뜨거웠던 그 날, 그의 엄마는 그에게 그렇게 말했다. 그의 부모가 운영하던 서점이 부도가 난지는 벌써 4년 전의 일이었다. 하지만 잊을만하면 또는 행복하다는 생각을 할만하면, 그 때의 일이 악몽처럼 갑작스럽게 찾아오곤 했다. 그래. 아무도 그에게 그 때의 일이 끝났다고, 이제 다 잊고 다시 시작하면 된다고 말한 적은 없었다. 그런데도 그는 늘상 그것을 잊는다. 지금 처한 처지를 잊고 다른 사람들처럼 살아간다. 아니. 다른 사람들만큼은 살아야지라고 생각한다. 다른 사람만큼 공부하고, 다른 사람만큼 놀고, 다른 사람들만큼 구입하고 돈을 쓰고 사랑을 하고 지랄을 한다. '엄마 공부가 가장 쉬웠어요.'라는 풍의 이야기와 '고난을 딛고 자수성가한 사업가'의 타이틀과 '집안 형편이 어려웠음에도 불구하고'라는 식의 전설과도 같은 클리셰는 그를 더욱 궁지에 몰아 넣는다. 그러다 엄마의 앓는 소리와 아버지의 쉰 목소리와 고향 집에 갔을 때 느껴지는 삭막감을 마주했을 때는 그는 어찌할지 갈피를 못잡는다.
'정신 차리자 세훈아.'
그는 또 다짐을 한다. 이 다짐이 올해만 들어 100번째인지 101번째인지 그는 헷갈린다. 수 많은 다짐과 약속과 의욕은 그를 더욱 지치게 한다. 아마 그 다짐 이후 필연적으로 나타나는 나태와 실패와 게으름 때문이리라. 그는 인생을 살면서 하늘의 별만큼이나 수많은 다짐을 계속해 왔고, 은하계만큼이나 수많은 망각을 벌여왔다. 괴로운 것은 다짐 자체가 아니라 다짐 이후의 망각 때문이었다. 얼마나 더 많은 망각이 그를 괴롭힐까. 앞으로 남은 인생, 끝없이 펼쳐진 길을 헤어보며 그는 절망에 빠진다. 버스 앞 창에 보이는 길이 끝이 안보인다. 페이드 아웃.



